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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

수도 파리가 있는 프랑스는 인구 6천만 명이 넘는 나라로 세계 22위의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여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에 자리 잡은 프랑스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에 속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에 많은 발전을 한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프랑스 과거

2. 프랑스 현재

3. 프랑스 냉전기

 

1. 프랑스 과거

1,500년대 프랑스는 인구 1,500만 명의 프랑스 국토 대부분이 프랑스 왕국으로 형성되었으며, 프랑스 내의 권력은 위대해졌습니다. 그 후 외세를 발휘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탈리아를 위해 함스부르크 가문과 계속해서 싸웠지만 그 당시 샤를 5세였던 함스부르크에게 계속해서 패배하였습니다. 한편, 왕실은 종교의 개혁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프랑스 개혁 칼뱅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위그노라고 불리었지만, 16세기 중반에는 전체 인구에 비해 약 5%로 매우 낮았지만 대부분 왕실에 충실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발루아 왕조, 우그니 쪽의 부르고 가문, 가톨릭 쪽의 키즈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우그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과거에 모든 나라들이 전쟁을 하였지만 프랑스 전쟁만큼 긴 전쟁도 드물었습니다. 위그노 전쟁 이후, 발루아 왕조는 부르봉 왕조로 대체가 되었으며 낭트 왕조는 내전을 대부분 종식시켰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종교개혁 때문에 많은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전쟁은 없었습니다.

 

내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일찍이 바깥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일찍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프랑스는 리슐리 같은 관료 주도로 개신교와 낭트령과의 타협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외교 정책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의 인구는 1600년대에 22만 명에 달했습니다.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지만, 30년 전쟁 동안 기독교인들과 연합하여 함스부르크 제국과 싸웠으며, 국가인 오스만 제국과도 동맹을 맺었습니다. 30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는 유럽 강대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685년 낭트령 폐지 이후 프랑스 인구는 2150만 명이었고, 여전히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는 런던과 함께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51만 명의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루이 14세 당시에 주로 상업적인 종사를 하던 위그노의 사임으로 큰 재정적인 손실을 입었습니다.

  • 그 후 루이 15세 시절에도 재정확장은 좋지 않았으며 7년 전쟁 등 큰 전쟁에서 계속해서 패배를 겪었습니다.

 

프랑스-에펠탑
프랑스

 

2. 프랑스 현재

200년대의 프랑스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에 미국은 프랑스를 "무모한 사슴 왕" 이라고 부르지만 뉴욕 포스트와 같은 도구들은 프랑스의 온라인 이름을 "귀여운 사슴 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프랑스는 버락 오바마의 통치 덕분에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진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두 나라 사이의 분열은 정권 교체가 해결될 수 있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선된 관계는 프랑스의 바람일 뿐입니다. 물론, 이라크 전쟁은 결국 세계의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으로 판명되었으며, 그 후 프랑스와 독일의 행동은 정당화되었습니다.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프랑스가 미국의 일부분들에 배신당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에 반대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맥케인조차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해 농담을 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시작된 이래로 양국의 지도자들은 여러 번 만나거나, 중동 지역을 방문하거나 공유하였지만 이것은 미국과의 관계과 조지 부시 대통령 시대의 대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통합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아들 부시가 망친 것보다 더 낫습니다. 예를 들어 메르켈 총리의 집권 이후 비슷한 이유로 인해 파괴된 미국과 독일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9년 11월에는 프랑스 정부가 세금 사기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소셜 네트워크를 통제하기 시작했을 때, 인권 단체들은 이에 대응하였습니다.

  • 리옹 2세 대학생은 불평등에 항의하기도 하였습니다.

 

3. 프랑스 냉전기

프랑스에도 과거에 냉전기가 존재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 알제리나 베트남 같은 식민지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싸웠지만 결국 패하고 떠났습니다. 알제리와 베트남에 식민 지배를 포기하지 않았던 제4차 프랑스 정권은 찰스 드 골 레 정부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프랑스 자유 정부는 설립되었고, 제5차 프랑스 공화국은 설립되었습니다. 냉전 기간 동안 프랑스는 나토를 떠나 미국과 영국의 유럽 질서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독립 항토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국민적 감정을 크게 갈라놓았습니다. 프랑스가 나토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영국이 프랑스에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핵무기는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의 상징이기 때문에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는 프랑스 같은 무기를 보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1956년 발발한 제2차 중동전쟁에서 프랑스와 영국 연합은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소련은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제거하겠다고 위협하였으며, 미국은 이집트 침략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영국과 프랑스는 그들이 한 일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에 강제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프랑스가 절망적인 이유는 영국이 미국과 프랑스의 핵 프로그램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1957년 핵무기 개발에 즉각 개입하였으며, 1957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과 비밀리에 핵기술을 공유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소련이 핵 공격을 감행하고 프랑스의 핵 개발 계획은 방해한다는 미국의 위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 프랑스는 국방지출의 대부분을 목표로 하는 정책의 핵심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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